토, 12/05/2020 -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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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별봉사의 첫 경험

(글쓴이 : 트릴로이) https://cafe.naver.com/jworkr/779

(사진은 "파블로의 첫번째 호별방문"이라는 영화에서의 한 컷)

드디어... 내게도 봉사란 걸 피할수 없는 나이가 닥쳐왔다.

따라다니는 것만도 표현불가하도록 따분하고 짜증나는 봉사를 직접 해야만 했던 것이다.

마음 속에선 안돼! 난 싫어! 이런 강력한 함성이 폭풍우처럼 휘몰아 쳤지만 성서연구사회자는 너무나 밝은 얼굴로 나의 결심을 지지한다고 치켜세워 주었다.

어머니는 마냥 꼬맹이 같았던 내가 왕국봉사자가 되어 대견하다고 했고 아버지는 장노다운 말투로 여호와의 증인 조직에 누가 되지 않는 전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에게 차마 난 지금 미칠 것만 같다는 마음속 진심의 소리가 나가지 못했다.

봉사하다 친구를 만나면 어쩌지? 심심해서 양복좀 입어봤다고 할까? 너무 진지하게 캐물으면 어쩌지? 그냥 미안하다고 할까?

아무튼 준비하느라고 여증조직서 봉사준비용으로 권하는 추리책을 들여다봤다.

정말 이런 맨트로 효과를 봤다는 게 진짜?  여증꼬마인 내가 봐도 죄 겉도는 소리 투성인데? 1975년삽질에 대처하는 답변도 있었다. 역시나 말장난같은 답변.. 저런걸로 사람들이 속아넘어가나? -> 요 속아넘어가나? 라는 마음의 소리를 하는 순간 갑자기 죄책감이 휴지에 물이 젖어오듯 내 온몸을 휘감고 말았다. 감히 협회가 하는 일을 '속여넘기는'일로 표현하다니... 혹시나 협회의 하나님께 노여움을 살까봐 잠시 고개 숙이고 참회의 기도를 했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과 양복 상의를 입고 가방을 껴안은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멍청한 애송이 그 자체였다. 사회자는 역시나 멋지다고 감탄사를 남발중이었다. 다시한번 그 희멀건 얼굴에 물을 한 양동이 퍼부어주고 싶었다.

  지루하고도 쓸데없는 봉사모임 멘트들이 끝나고 인도자는 구역을 정해주었다. 하필 지하실 안에 지하실이 있고 옥탑 안에 옥탑이 있는 다가구 다세대 주택덩어리였다. 까도까도 계속 튀어나오는 오뚜기 인형같은 집들이다. 최악의 경우 여기서 봉사하고 바로 1미터 뒤 현관문에서 멀끄러미 쳐다보는 다음 집주인을 만나 따블로 까이는  외통수를 당하기도 하는 구역이다. 인도자씨.. 난 초보라고.. 좀 말끔한 구역좀 주면 안되나?  비슷한 취지의 푸념을 사회자에게 하니 사회자친구는 자신은 자신의 집 구역도 받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더더욱 현기증이 난 나는 그나마 집주변 구역을 받지 않은 것은 정말 너무나 다행이라는 공감을 피하지 못하면서 그 구역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헬게이트가 활짝 열렸다. 다가구 다세대 주택들에 뻥뻥 뚫려있는 시커먼 문구멍들이 키로보나 얼굴로 보나 애송이인 내 앞에서 어서와. 봉사셔틀은 처음이지?  하는 대사를 건내고 있었다. 사회자가 가볍게 첫집을 두들기고 아줌마 하나가 나와 자다가 뒤통수 맞은 얼굴로 사회자를 쳐다본다. 사회자는 나름 노련하다는 듯 웃으며 좋은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했다. 아줌마는 무슨 좋은소식? 하고 짧은 끝말로 반말처럼 물었다. 사회자도 나보다 나이를 아주 많이 먹은 사람이 아닌지라 그 역시 애송이 축에 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회자의 다음 말이 좀 가관이었다.

  왜 좋은소식인지 궁금하시죠?  이랬다.  여지껏 몰랐는데 내가 직접 하려고 관찰해보니 보통 **같은 드립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줌마는 어떨까.. 아줌마 쪽을 보니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신기해하는 것도 아닌 딱 중간쯤의 표정으로 얼굴이 빚어져있었다. 사회자는 다시 횡설수설 우릴 사랑으로 지어주신 분의 말씀으로부터 주어지는 좋은소식인데요.. 이런소릴 하면서 가방을 뒤적뒤적 했다. 다시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아줌마의 표정은 확실하게 썩소를 머금고 있었다. 교회나오라고?

  이건 아줌마가 승부수를 잘못 던진 거다. 여증들은 교회가 아니고 종교가 아니라는 유체이탈 멘트에 매우 강한것이다.

  교회하곤 관계없습니다.

  맞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줌마가 던진 질문에 대한... 뭐랄까 솔직한 답은 더더욱 아닌 여증특유의 여증들만의 세계에서 나온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사회자는 드디어 최종병기 파수대를 꺼낸다. 저걸 아줌마가 받고 헌금까지 하면 대박이겠지.

아줌마의 얼굴을 지켜봤다. 어라? 의외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

 사회자가 의미없이 넘기는 책장들을 군말없이 따라가는 아줌마의 시선.. 마침 파수대는 관심을 가진 하나님이 있나 없나 이런 솔깃할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있었다. 물론 막상 읽어보면 별로 결정타없는 하나님의 왕국이 세상모든 문제 다 털어준다는 몇 마디로 끝나는 내용. 사회자는 파수대가 던진 질문에 아줌마가 흥미를 보인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사회자의 다음멘트가 따랐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이루 말할 수가 없고 그건 아무도 해결해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책임질 수가 없죠.

오... 멋진 멘트다.

 그러나 우릴 지으 신자라면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하.... 요렇게 몰고가면 되는구나.. 역시나 단 몇년이라도 더 세상을 살아온 자의 관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줌마는 이제 완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다음 대사가 나왔다

  책 사라고?

  사회자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이 책자는 '무가'입니다. 순간 나는 저걸 왜 '무료'라고 할수 없는지 생각했다. 그 다음 아마도 평소엔 하지 않았을 사회자의 FM맨트가 이어졌다. 무가 책자로서 원하신다면 이웃에 좋은소식을 전하기 위한 사업을 위해 헌금하신다면 감사히 전달하겠습니다.

 오오... 돈 이야기까지 해치웠다.

  아줌마의 미소는 이제 소리내어 웃는 단계에 돌입했다. 낄낄.. 그래 얼마면 돼?

   액수는 정해져있지 않으니 마음이 가는대로..

아줌마는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 지갑을 꺼내더니 천원짜리 몇장을 꺼내갖고 온다. 자.. 이걸로 뭐좀 먹으면서 해라이~

그러면서 문을 닫으려고 했다. 사회자가 당황한다. 아 감사합니다. 이걸 나중에 읽어보십시오. 파수대를 건내준다. 그냥 문을 닫으려던 아줌마가 그걸 받고 턱 하고 문을 닫았다.

...........................................

이렇게 해서 사회자는 내 앞에서 표준매뉴얼대로의 전도와 파수대 '유료'배부까지 성공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물론 나는 뒤에서 아줌마가 집안에서 하는 소릴 들었다.

 애새*들 시켜서 교회앵벌이를 하나보더라고 껄껄..

 아무튼 사회자는 할일을 다 했으므로 나에게 다음 집도 자신과 같은 표준방법으로 잘해보라는 무언의 의기양양한 눈짓을 보낸다.

사회자가 두드린 집은 다가구 주택의 사령실.. 주인집이었다. 나는 이제 그집의 옆으로 간다. 거기엔 현관문 몇이 달려있는데 그 현관들은 각각이 하나의 가구인 것이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드디어 현관문 하나를 두들겼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다시 두드렸다. 역시 기척이 없다. 다행이다.

 사회자를 쳐다보니 다시 두드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욕을 하지 않는 모범적 여증 꼬마인 내게 저런 마음이 들었을 리 없다.. 라고 당시에도 나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 세번째 노크를 했다. 벌컥 문이 열리고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나타났다. 나는 당시에 10대 초중..(사실 많이 어렸다) 꽤 공격적으로 문을 열고 쏘아보는 청년 앞에 주눅이 든 태가 역력한 나는 안녕하세요. 좋은소식을 말씀드리려... 하고 있는데 청년은 뭐? 라고 한마디로 되물었다. 다시 나는 좋은 소식입니다. 라고 하는데 청년은 그게 뭔데 라고 아까보단 좀더 공격적으로 물었다. 아 그건요 우릴 지으신자가 제공해주는..  청년은 거기까지 듣고 교회안간다. 라고 말하면서 문을 닫으려고 했다.

물론 여증은 교회와 다르다는 자기인식과 어필에 매우 강하다. 나역시 그랬다.

  아뇨 저희는 교회와 관계없습니다.

  그런데 청년이 다시 말했다. 그럼 여호와의 증인 그거구나?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에서 추리책내용을 기억나는대로 0.000001초동안 검색했지만 이런경우에 대한 매뉴얼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뭐라도 말해야 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여호와의 증인이고요.

  말하는 순간 봉사지였나 추리책이었나 처음부터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신분을 굳이 밝히지 않는 게 좋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나는 완벽하게 패배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자 청년이 말했다. 하여튼 너네들은 정말 답이 안나온다.. 이런 애들을 전도보내다니. 이러면서 청년은 문을 꽝 닫았다.

 아뭏든 첫경험이 끝난 것이다. 뒤에서 거들 준비를 하고있던 사회자가 뭐라고 하긴 했는데 잘 들리지도 않았고 기억도 안난다. 어차피 사회자*도 동정심으로 헌금도 받고 파수대도 전한 거니까. 그런데 이 사회자 *이 의외의 가오를 잡는다.

거식아. 그럴 땐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답변보다는 아. 잘 알고 계셔 반갑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거야..

아... 맞다 어딘가 그런 매뉴얼이 있었던 것같다. 그런데 화가 난다!

(이 &%#) 너도 동정받은 거지라니까?

  그 다음 집에서도 사회자는 잡지하나를 껴넣어주었고.. 집주인 아저씨는 그걸들고 들어갔다. 내 다음 집은 왠 아가씨가 배시시한 얼굴로 기어나왔다.. 이 사람은 또 하염없이 이야기를 듣는 거였다. 여자라고는 해도 성인이다. 나는 키도 가뜩이나 작은 편이어서 여자였지만 우러러보며 이야기를 하는 처지였다. 무엇보다 그렇게 주절주절 해줄만한 '좋은소식' 이야기거리가 내게 준비 되어있지 않았다. 내가 우려하던 상황이 사실 이거였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이 아가씨는 얼마든지 듣고 있을 기세였다.

 아니 이 여자는 그냥 귀찮다고 좀 할 것이지ㅠㅠ.... 간신히 정신을 차려보니 아가씨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본론이 뭔가요?

 나는 허둥지둥 가방을 뒤적였다. 가까스로 떨리는 손으로 잡지를 건냈다. 떨리는 손이라는 게 무슨 은유가 아니라 진짜로 바들바들 떨었다. 아가씨는 그걸 받고 조금 뒤적여보고 그럼 이제 들어가봐도 되죠?  그랬다.. 그 말을 듣고 난 무슨 답변을 해야할지 몰라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정말 멍청해보였을 것이다ㅠㅠ

 아가씨가 문을 닫고 그 집을 나오는데 이 사회자*이 또 말 한마디 꺼낸다.

 거식아.. 방금같은 경우는 니 밥이나 마찬가진 거야. 네가 준비를 잘 했으면 그 자리서 회관참석도 시킬 수 있는 경우라니까?

  (이런&%#$)... 어린나이에 나는 그의 **이를 날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들어가도 되죠?'  라고 하던 그 여자의 마지막 말이 이렇게나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 그저 쓰러질 지경이었다.

 이후로 나는 거의 십수년 그런 생활을 하게 된다.. 첫날은 단지 부끄러운 일만 있었을 뿐이지만 이후로 나는 봉사라고 나와서 내가 한구역을 다 돌고 자매들은 몇집 하지 않고 앉아 담소를 나눈다는 불편한 진실에 자주 경악했고, 그러다보니 너무 어렸던 나에게 사람들은 아주 적대적이거나 의외로 친절하거나 양극화의 자세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 봉사할 때 들었던 생각대로 추리책은 거의 효과가 없었고 그건 그냥 얘쁘게 만들어져 나온 보기좋은 책일 뿐이었다. 아마 미국에선 그런 소리가 통하던 게 아닐까. 한번쯤은 따귀가 날아왔고 한번쯤은 소금세례를 받았다.

  나름 진리의 자부심을 가졌던 당시의 내게 별로 안좋은 대응을 받은 집주인 여러분께 지금은 머리숙여 사과드린다.

모르고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십수년 저 봉사란걸 하면서 겪은 일들은 그저 부끄러움과 이 미안함. 그리고 무의미한 시간낭비라는 자괴 외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아..

  내가 데리고 온 관심자 아가씨 하나는 결국 침례까지 받긴 했다. 그녀는 침례를 받고 교통사고를 당해 수혈을 거부하다가 죽을 뻔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살아서 그때의 나따위는 비교도 안될 열혈 왕국봉사자가 되긴 했다.그렇게 되면서 그녀는 가족과 거의 의절당했음은 짐작하는대로다..

그녀에게 제일 많이 미안하다..

**누나... 그래도 안죽어서 다행이야.. 누나 죽었으면 난 지금쯤 돌아버렸을테니 살아줘서 고마워.. ㅠㅠ 뒤늦게 여길 와서 이글 보면 거시기구나.. 하고 알아봐줘요.. 미안해 여증되게 만들어서..ㅠㅠ

#여호와의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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